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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  호호아줌마   2025-09-20

쇠고기를 잴 때 양념장에 버무리거나 적셔두거나 하면 한결 간편하다. 한데 우리 옛 어머니들은 낱낱이 앞뒤를 뒤집어가며 양념장을 골고루 빈틈없이 손가락끝으로 칠하기에 품이 많이 든다. 손가락맛을 빈틈없이 들인다 하여 이를 ‘맛손 들인다’라고 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을 들여 미나리나 콩나물을 다듬는 것도 맛손들인다하고, 김에 들기름을 칠 할 때에도 맛손들인다고 한다. 맛손이 갈수록 그 음식은 연하고 별미가 난다고 알았던 것이다.

과학적인 어떤 근거가 있는지는 모르나 맛이 배어나지 않는 이상, 맛의 차원에서 생겨난 생활습속은 아닌 것 같다. 우리 전통적인 요리철학이 있다면, 그것은 요리의 결과보다 요리하는 과정에 보다 뜻을 두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정성을 많이 들였는가 하는 정신적 가치에 보다 큰 비중을 두었었다.

뚝배기 된장 하나 끓이는 데도 이 과정을 중요시 했다. 같은 숯불도 불길이 센 무화, 불길이 은은한 ‘문화’가 있고, 재로 덮어둔 ‘여화’가 있는데 된장찌개는 문화로 오랫동안 달구어야 제 맛이 난다. “된장 맛으로 이불속의 며느리 들여다 본다”는 속담은 바로 된장 끓이듯 하는 정성으로 이불속의 은밀한 정사를 유추한 것일 게다.

품과 정성을 들이는 음식으로 부부간의 사랑이나 모자의 사랑을 북돋았던 것이다 그 라는 이름의 책이 올 연초에 유럽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한다.

1백여권의 명작을 남긴 영국의 80대 노작가 카트랜드 여사가 지은 것으로 인스턴트 식품에 대한 심리학적, 문명사적 비평을 한 책이다. 음식에 정성을 들일 수 있는 ‘과정’을 증발시킨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먹는 가정일수록 자녀들이 가정폭력이 심하고, 또 인스턴트 식품을 선호하는 나라일수록 가정이 반비례해서 덜 화목하고 가정파괴율이 높다는 것이다.

인스턴트 식품은 통조림까지도 거부하는 프랑스 가정이 그것을 즐겨먹는 영국이나 미국의 가정보다 부부간이나 모자간이 화목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했다.

이는 음식 만드는 것으로부터 유리돼가는 한국의 주부들에게 경종이요, ‘맛손들인다’는 우리 심오한 전통의 싱그러운 재발견이기도 하다.
















이규태 코너
(198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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